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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 3부9장
16-02-10 17:53 5,748회 0건



** 독자 여러분들께 구정 인사를 드립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가족, 친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십시오."

이렇게 빈말만 하는 것 보다는 글이라도 들고 와야 할 것 같아서 열심히 자판을 두들겼습니다.
그 대신 .. 이번 글은 미성년자가 읽어도 되게 섰으니까 너무 섭섭해하시지 마세요.

구정 지나고는 소라스럽게 쓸게요. ㅋㅋ ...



** <흐르는 강물따라>를 어설프게 끝내서 만족스럽지 못하신 것 같은데 ..
1부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2부로 들어가는 시작으로 보시면 좋겠고,
제 줄거리 노트를 첨가한 이유는 제가 스토리를 충분하게 전개시키지 못해서 였습니다.

** 아무튼 명절 지나고 찾아뵙겠습니다.


- Ja'dore -


=*=*=*=*=*=*=*=*=*=*=*=*=*=*=




122. 겨울 다음에 찾아온 새로운 봄




[1]
수요일 아침에 나와 지혜는 한수정의 병실에서 한수정과 작별을 해야 했다.



"후유증은 생기지 말아야지.
치료는 빼먹지 말고 꼬박꼬박 잘 받아."

"걱정하지 마. 나도 조심할게.
여기는 엄마, 아빠도 계시고, 은희언니도 있으니까, 안심하고 가.
이번 일 끝나면 나도 들어가니까, 그 때 보자."

"수정 언니. 이만큼 건강해서 정말 고마워요."
"그래. 지혜한테도 너무 고맙고 미안해. 한참 추울 때 와서 고생만 하다 가는구나."

"언니. 나 이번에 고생이 아니라, 기적을 보고 가거든요."
"너도 참. .."



우리는 병원 입구로 내려와서 한수정의 부모님과도 작별했다. 한수정도 휠체어를 타고 같이 내려왔다.


우리는 최은희의 차에 탔다. 차가 출발하고, 그들은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든다. 그런데 한수정이 밝게 웃는 얼굴이다. 마음이 놓인다.

최은희는 피어슨 공항으로 가서 우리를 대합실 입구에서 내려 주었다.



"누나는 바쁘신 몸이니까, 이제 그만 들어가.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갈게."

"그래. 와 줘서 너무 고맙고, 그냥 이렇게 보내서 너무 미안해. 나도 요새 수정이 핑계로 농땡이 짓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

"나중에 수정이 올 때, 누나도 같이 올 수 있어?"
"그 때는 아직 힘들어. 여름 휴가 때에는 기대해보자."




최은희는 나와, 그리고 지혜와 차례로 포옹하고 키스했다. 최은희는 차에 타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시내를 향하여 출발했다.






[2]
나와 지혜는 비행기에 타고, 자다 깨다 하면서, 긴 비행 끝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아이린이 우리를 마중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대합실에서 아이린은 지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하아아. .. 우리 지혜가 다시 왔구나."
"엄마. 왜 우는데? 나 안 아프고 잘 있다 왔거든요?"

"엄마가 너랑 처음으로 떨어져 있었잖아. .. 그래. 지혜 너도 이제 다 컸다."
"어라? 내가 언제는 크다 말았나?"



우리는 아이린의 차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린과 지혜는 지혜의 텔로 올라가고, 나는 내 텔로 왔다.




[3]
나는 송실장에게 도착했다는 전화를 했다. 그녀는 당장 내 오피스텔로 오겠다고 했으나, 나는 말렸다.




"너무 피곤하거든요. 오늘 하루만 봐줘. 내일 일찍 출근할게."
"우리 회장님, 진짜 해도 너무 하시네."

"미안. 이러다가 내가 아플 것 같아서 그래."
"알았어요."



나는 모든 일을 제껴 두고 사우나에 갔다 와서 잠을 잤다. 자도 자도 잠은 계속 온다. 인사불성이다. 어쩌다 보면 아이린이 와서 내게 키스를 했지만, 나는 먹을 것도 사양하고 그냥 잠만 잤다.




[4]
다음 날 출근해서, 그 동안 이메일로만 알던 회사의 업무들을 일일이 파악해야 했다. 하루 종일 송실장의 도움으로 그 일을 웬만큼은 해치웠다.

특히 골치 아픈 문제는 나라마트의 웹사이트였다. 이제는 인터넷 쇼핑몰이라고 하는 것이 폼이 잡혀있다. 아직까지 여기서는 옷만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방효은과 이경숙이 이 홈페이지의 관리를 하는데, 엄청 짜증스러워 한다. 그 이유는 경기도 파리시에 사는 한 여성 고객 때문이다.

이 여성고객은 인터넷에서 바지를 주문했다. 그리고 주은혜는 택배를 이용하여 그녀에게 바지을 배송했다. 그런데 이 고객은 자기가 화면에서 본 상품이 아니라면서, 교환이나 환불을 해달라고 했다. 주은혜는 교환을 해준다면서 바지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고객이 반품한 바지는 고객이 벌써 몇 번을 입고 난 후였다. 주은혜는 전화로 이 사실을 그녀에게 물어봤지만, 오히려 그녀는 그런 일이 없다면서, 억울하다고 버럭질을 한다.

주은혜는 다 알면서도 당해준다. 시끄러워질까 겁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교환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팬티가 아니라 진이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그런데 그녀는 나중에 그 바지를 또 반품하면서 또 교환해달라고 한다. 이렇게 그녀는 벌써 교환만 네 번을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다고 한다. 만일 배송 날짜가 지연되거나 하면, 그 고객은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게시판에 비난하는 댓글을 갈기고 가는 것이다. 이런 댓글은 운영자가 함부로 삭제할 수가 없다. 삭제하면 삭제했다고 더 난리를 부리기 때문이다.

그 여성 고객이 하는 일은 보나마나 뻔한 수작이다. 그녀는 옷을 살 생각은 없다. 될 때 까지 교환하고, 바지를 바꿔 입다가, 더 이상 불가능해지면 잠수를 탈 것이다. 이것이 주은혜가 말하는 그 여성 고객의 시나리오이다. 주은혜는 벌써 과거에 이런 경우를 몇 번 겪어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여성 고객이 갖고 있는 무서운 무기는 바로 악성 댓글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녀를 직접 방문해보기로 했고, 방문하는 일은 아이린이 맡기로 했다. 아이린은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에 하루 날 잡아서, 그 고객을 만나볼게요. 우리 나라 땅덩어리가 중국처럼 넓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찾아가서 만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므로, 나는 아이린을 따로 불러서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사람의 입 안에서 뺨의 안 쪽을 면봉으로 긁어. 그러면 그 사람의 세포가 면봉에 묻어 나오거든. 그 면봉을 비닐 팩에 담아와. 그 사람이 입었던 바지에도 그 사람의 몸에서 묻어난 세포들이 엄청 많거든. 두 세포를 갖고 DNA 검사를 하는 거야. 만일 일치하면 발뺌을 못해."

"잠시 입어본 경우랑, 하루를 입고 다닌 거랑은 어떻게 구별해요?"

"그건 구별하기가 어려워. 그러니까 누나가 그 사람한테 겁을 줘야 해요. 유전자 검사를 하는 데로 보낸다고 하지 말고, 경찰에 넘겨서 국립과학 수사 연구소에 보낸다고 해. 그러면 그 사람 깜짝 놀라서 그런 생각이나 대드는 일은 못 할거야."





아이린이 그녀를 직접 방문해서 우리가 말한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자, 그녀가 백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직접 찾아오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진상짓을 중단시켰다.


앞으로 인터넷 쇼핑은 컴퓨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스마트폰을 위한 애플리케이션도 개발을 끝내고 사용하는 중이다. 또 우리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취급하는 상품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비해서 배송시스템도 점차 갖추는 것으로 하고, 한상무가 이 일을 맡기로 했다.




[4]
나라마트는 작년과는 다르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점차로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 노력한다. 특히 우리는 상품을 구매하는 시스템도 뜯어고쳐야 했다.

지금까지는 상품을 구매하는 일은 총무과에서 관장했으나, 앞으로는 이 일을 전담하는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기로 했다. 생산자들이 상품을 우리에게 납품하려면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지금까지는 총무과에서 상품을 심사하여 합격하는 품목만 판매를 해왔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불합격하는 상품도 좋은 상품이면 자격 요건을 맞추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좋은 상품과 지역의 특산물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자들은 대부분이 자본이나 기술이 약한 중소기업이거나 농어민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상생을 위한 지름길이었다.

우리가 하는 이런 저런 일들이 언론에 자주 긍정적으로 보도가 되고, 우리에게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인다. 우리의 주가도 서서히 상승세를 타게 된다.


나는 한상무나 구전무를 위해서 일거리를 계속 만들어내야 하고, 또 밖에서 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일을 한다. 한상무나 구전무는 동서남북으로 다니면서 매장과 물류센터 그리고 생산 공장들을 관리하는 상황이다. 그들이 없이는 한강유통이라는 기업은 존재하기가 힘들다고 보면 된다.

나는 한상무나 구전무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회장직을 반납하겠다고 부탁을 해왔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내가 하는 것만큼 해 낼 자신이 없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중국에서 임영신 모녀가 입점해있는 백화점도 서서히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그녀들은 이번 연말에는 직접 매장을 오픈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전해왔다.





[5]
캐나다에서 돌아온 나는 회사도 회사지만, 내 학생들도 문제였다. 도착하던 날은 나나 지혜나 정신 없이 잠만 잤다. 다음 날 저녁에 내가 퇴근해서 우리가 공부하는 오피스텔로 모였다. 그 자리에는 물론 윤기숙도 함께 있었다.



"오빠. 이제 고3 되니까, 나나 해수는 수능을 목표로 공부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해도 되는데, 조금 더 현실적인 공부를 하자. 작년 3월 초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보세요."

"으음. .. 음 .. 3월 모의시험?"
"그래. 전국 연합 학력평가야. 이번 방학은 그 시험을 목표로 준비하자고."

"그게 그렇게 중요해?"
"작년 3월에 자살 소동을 일으켰던 사람이 누구더라?"

"아이 참. 오빠는 왜 또 옛날 얘기를 .."

"이번 시험 준비를 하는 이유는, 이번 시험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번 시험은 작년에 배운 수능 과목을 전부 복습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러니까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전부 기억에서 끄집어내야 한단 말이야. 이거 없이 수능 문제 푼다고 생각해보세요. 말이 되니?"



여기까지 나와 지혜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던 해수가 한마디 했다.



"내 친구들 학원이나 과외는 수능 푼다던데 .."

"그러니까 말이 되냐고. 방금 오빠가 말했잖아. 잊어먹어서 모르는데, 그걸 왜 풀고 있냐? 시간이랑 돈이 그렇게 남아돌아? 이것들이 공부를 폼으로 하나 .."




지혜가 해수를 간단히 제압한다.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한가지는 복습이고, 또 한가지는 과거에 그 시험에 나왔던 문제들을 공부한다. 알았지?"

"예. 오빠."



낮에는 윤기숙이 지혜, 해수 그리고 경식이를 데리고 대학 도서관으로 간다. 저녁에는 이들이 나와 같이 밤 늦게까지 씨름을 한다. 지난 해에 배운 것을 복습하고, 실제로 그 시험에 나왔던 문제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나는 윤기숙에게 수고비를 지급하려고 하지만, 윤기숙은 손사래를 친다. 나중에 아이린이 윤기숙을 따로 데리고 나가서 옷을 사준 적이 몇 번 있었다.

복습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교육 방송을 활용하는 것으로 했다. 그렇게 해서 되지 않는 것들은 내가 덤벼든다. 그런데 기출문제를 공부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무리였다.

지혜와 해수에게는 한 문제 한 문제가 악전 고투였다. 얘네들에게는 지금 당장 문제를 풀어서 답을 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선 급한 것은, 문제를 읽고 난 후에, 이 문제는 무엇을 묻는 문제인가를 알아야 했다. 애들은 그런 시험에 나왔던 문제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한다. 첫번째 문장을 읽고, 그 다음에 두번째 문장을 읽으면, 앞에서 읽은 문장을 까먹는 것이다.

똑같은 것을 묻는 문제라도, 문제집에 나와 있는 문제와 시험에 나왔다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장으로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집에 나와있는 문제는 간단하게 적혀있기 때문에, 읽으면 무엇을 묻는 문제인지 금방 알게 된다. 그런데 시험에 나왔던 문제는 문제만도 엄청 길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를 모른다.


지혜와 해수는 이 벽을 스스로 넘어서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경식이에게도 똑같다. 우리는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을 포기했다. 그 대신에 '문제를 읽고, 무엇을 구하는 문제인가를 알아내는 것' 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를 읽고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풀어서 답까지 낸다면 애들이 돌아버릴 것이다.

이것이 해마다 3월이면 우리나라의 고등 학생들 50만명 누구나가 겪는 일이다.

한 달이 지나자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떤 문제들은 비슷한 유형으로 적혀있기 때문에 금방 읽고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 동안 잊어먹고 잇던 교과 내용들도 기억에서 많이 되살아났다. 아예 모르는 것은 나에게 다시 배운다. 얘네들이 자기들도 뭔가를 할 수 있다면서 엄청 신기해한다.


그렇지만 영어나 국어는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박스 안에 들어있는 지문 텍스트가 얘네들에게는 길어도 너무 길다. 정해진 시험 시간 내에 저걸 이해는 고사하고, 읽는 것도 문제이다. 보도 듣도 못한 이야기들도 많이 적혀있다. 그러니 지문을 읽어도 내용 파악이 안되는데, 어떻게 문제를 풀라는 말인가?

내 애들은 매일 매일 낮에는 인터넷으로 교육 방송을 들으면서, 그런 독약같은 지문들과 싸워야 했다. 거기서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면 저녁에는 나와 같이 머리를 싸매고 덤벼든다.


이렇게 밤낮 없이 공부에 매달리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아이린이나 해수 엄마는 너무 보기에 안타깝다고 했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과외나 학원에 다녀서는 도저히 해결될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겉으로는 표시를 내지 않기로 나와 단단히 약속을 했다. 애들이 엄마 때문에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엄마들은 애들을 대학 도서관에 차로 실어 나르거나, 간식이나 식사를 챙겨주는 일은 열심히 했다. 그 대신에 밤에 잘 때에 가서 안아주든가, 키스를 하면서 위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다가 3월이 되고, 경식이는 고2가 되고, 지혜와 조해수도 이제는 고3이다. 3월 초에는 지혜와 해수가 전국 연합 학력평가 시험에서 갑자기 등급이 좋아진다.


이것은 3류 영화나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지혜와 해수가 지난 두 달 동안 뼈를 깎은 노력의 결과였다.



또 '성적이 좋아졌다'는 말은 40점짜리가 60점이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원래 3월 학력평가 시험은 지난 해를 복습하는 시험이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방학 내내 다음 학년을 준비하는 공부만 했다. 그 사이에 지난 해에 배웠던 것들은 까마득해졌다.

또 100점이 만점인 시험에서, 어떤 학생이 40점을 맞았다면, 60점을 날렸다는 말이다. 그러면, 60점을 날린 학생은 과연 실력이 없고 몰라서 날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뻔히 아는 것이지만, 문제에서 그렇게 표현해놓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도 엄청 많다.


우리는 지난 방학때 두달 동안을 밤낮 없이 복습도 이가 갈릴 정도로 많이 했다. 또 그런 시험 문제도 공부를 제법 했다.

적어도 얘들은 알고 있는 내용의 문제도 손대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시험에서 대충 찍고 잤지만, 지혜는 문제를 읽고 풀어서 답을 낸 것이 많고, 또 정답도 많다.

해수도 많이 좋아진 편이다. 평상시에 40점 맞던 해수는 이번 시험에서 해수의 점수는 40점을 유지하는 바람에, 점수가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애들 점수가 와장창 떨어지는 바람에, 해수의 등급은 올라가버렸다.


바로 이것이 공부를 시작할 때 내가 세운 전략이었다. 지혜와 해수는 내 전략을 이해했고, 징그러운 공부를 하면서 두 달을 보냈다. 그 결과, 지혜는 2등급보다 낮은 점수는 없다. 해수도 과거보다 등급이 두세 개씩은 쑤욱 올라가 버린다.


지혜가 공부하다가 스트레스가 찰만큼 차면 내 침대에 오기도 한다. 그런데 나에게 난폭하게 덤벼들지는 않는다. 작년보다는 많이 얌전해진 것이다.



"오빠. 나 많이 얌전해졌지?"
"감탄사가 모자랄 정도야. 너무 예뻐."

"생각해보니까, 오빠한테 졸라서 될 일이 아니더라고. 내가 오빠 다니는 대학에 못 가면 오빠가 나를 쳐다나 보겠어? 나도 일찌감치 실속 차리는 거니까, 오빠 너무 섭섭해하지마. 알았지?"



그래도 지혜는 나에게 키스하거나, 안아달라거나, 내 몸 위에 엎드려서 내 입술을 빨고, 내 입에 혀를 집어넣는 일은 한다. 다른 애들도 그렇지만, 특히 지혜는 너무 피곤해하고, 밤만 되면 뻗어서 시체놀이를 하듯이 잔다.




"인생 살면서 딱 1년만 그러면 돼. 이를 악물고 버텨."
"형. 나는 2년이잖아?"

"너는 남자거든. 여자들도 해내는데, 이상한 생각 하지 마."










[6]
길었던 겨울이 막을 내리고 드디어 봄이 새로 찾아온다.

3월이 되어 나도 3학년으로 복학을 해서 학교에 다닌다. 낯설고, 어설프지만, 나도 이제 복학생이다. 아침 일찍 회사로 갔다가, 학교로 가든지, 아니면 학교에 갔다가 저녁에 회사로 오든지.

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구전무와 한상무가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웬만한 일은 그들 손에서 해결된다. 그 대신 우리는 회의를 자주한다. 송실장이 회사 일을 들고 학교로 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녀와 나는 전화통화나 내가 점심 시간에 읽을 수 있도록 이메일을 통해서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제는 바지회장이 아니라 재택회장인 셈이다.


한수정은 3월 말에 들어오겠다고 했으나, 4월 중순으로 약 3주 정도 늦춘다. 통원치료 때문에 과제가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뇌진탕이나 뇌출혈 흔적이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한다. 수정이가 이제는 완전 정상인이다.


4월 중순의 금요일 저녁, 한수정이 초췌한 모습으로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내 눈에는 수정이가 대합실로 걸어 나오는 모습도 기적 같다. 그 자리에는 나 혼자 나갔다. 수정이는 내 품에 안겨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나는 수정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고만 울어 수정이 너 꼭 전쟁터에서 살아서 돌아온 내 딸 같아."
"너무 오바하지 마. 태현이 너는 볼 때마다 내 신랑감으로 제법 으젓해진단 말이야."



우리는 내 오피스텔로 왔다. 수정이와 아이린도 와서 조촐한 환영 파티가 열린다. 나중에 윤기숙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우리에게 왔다.


지혜는 한수정에게 붙어 앉아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계속 둘이 수다를 떤다. 나와 윤기숙 그리고 아이린은 그러는 두 사람을 보는 것만도 흐뭇하다. 지혜가 꼭 내 딸 같다.




"언니, 웰컴 투 서울. 하하"
"지혜는 한참 추울 때 나한테 왔는데, 나는 한참 따뜻할 때 왔네. 내가 너무 미안해."

"지금 춥고 따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언니가 여기 도착한 것이 다행 아닌가?"
"아니야. 이제 나도 너랑 똑같아. 나도 건강하다고."

"그런데, 언니 있잖아요 ..&$%$*&^("
"아니. 그럼 태현이는 아직? *^&%#$@^#(^??"

"글쎄 그렇다니까요."
"돌겠다. 알았어. 내가 저 인간을 이번에 콱!"

"하하하."




수정이는 나에게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부산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밤을 뜨겁게 불태웠다.

그런데 수정이는 밤에 침대에서 최은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야. 김태현! 아무래도 은희 언니가 이상하단 말이야."
"왜?"

"요새 엄청 신경질 적이고, 짜증도 심해졌어. 임신한 것 같은데, 물어보면 아니라고 우겨."
"뭐야? 누나가 아기를 가졌다고?"

"내가 보기에 .. 그런데, 언니는 일벌레였단 말이야. 연애도 안 했고, 남자도 없었거든."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나중에 아기가 나와보면 알겠지. 누구를 닮아도 닮을테니까 .. 안 그래?"
"그렇겠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 예감은 지난 번에 나랑 관계를 가졌기 때문일 것 같다. 수정이가 물어봤어도 최은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데, 내가 묻는다고 별 수 있을까?

한수정은 다음 날 나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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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녀 [22세](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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