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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少年(미소년) - 4부3장
16-01-22 22:20 2,608회 0건
퇴근 길에 가정방문일정 때문에 좀 늦은 석주가 집에 도착하자 우경은 약간 걱정이 있는
표정으로 남편을 맞았다. 긴 생머리를 리본으로 묶고 에이프런 안의 옷차림은 칼라가 있는
티셔츠에 진 핫팬츠. 검은 색 오버니삭스로 어려보이는 우경의 모습과는 어울리긴 해도
나이값을 못하는 거 아니냐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발랄하고 귀여운 모습이지만 약간
어두워 보이는 게 거슬렸다.
<우주는 자?>
<네. 오늘은 왠일로 자기 방에서 자네요.>
우주는 사실 자기 방이 있었다. 아기니까 아무데서나 어른 옆에 재우면 그만이고 어린
애기를 따로 떼어서 재우는게 꺼림직하니까 방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동화책
책장이나 장난감등으로 놀이방으로라도 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주는 자기 방은 순전히 놀이방-때때로 손님용 객실- 으로 하고 대개 엄마, 아빠나
누나인 수진, 최근에는 우쿄의 옆에서 번갈아가며 잤고 우쿄조차 우주를 옆에 재우며
돌보는 것을 즐겨했는데 오늘은 이례적으로 혼자 잔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 울거나 하면
데려와 옆에 재워야 겠지만.....
덧붙여 지상2층. 지하 1층으로 원래 각층이 별도의 가정집이었던 집은 4년 전쯤에
석주와 우경일가가 이사하면서 한 집으로 리모델링 한 것이다.
석주가 집안의 종손이다보니 가끔 시골에서 대거 올라오는 친척들을 위해 큰 집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친가의 의향과 지원에 의해서였다. 나중의 경우 지금 석주의 집이
본가本家가 될 공산도 있기도 해서이다.
2층에 수진의 방과 우쿄의 방, 그리고 창고로 쓰이는 작은 방이 있었고 가운데 본래
거실겸 주방이었던 큰 마루와 테라스로 변한 마당이 있다. 물론 욕실겸 화장실도 있는데
재작년에 처음 한국에 온 우쿄가 곤혹해 하던 것이 욕실과 화장실이 같은 곳이라는
것이었다.-일본의 가정집은 대개 욕실과 화장실이 별도라고 한다.-
이전 주인이 살았던 1층은 베란다가 있는 거실을 중심으로 별도의 욕실이 딸린 부부방과
주방, 우주의 놀이방과 석주의 서재, 세탁실로 쓰이는 욕실이 있는 식인데 석주의 서재는
손님용 객실로 쓰이지만 전주에서 친척분, 특히 부모님이 오실 때 거처하는 곳이 되는
것이다.
집의 대문과는 반대방향으로 큰 길쪽에 문이 나 있는 우경의 변호사 사무실은 이전 주인이
두개의 점포로 만들어서 세를 냈던 공간을 사무실 용으로 튼 지하에 있는데 말이 지하이지,
집의 대문 쪽과의 높이 차로 사무소의 현관이 있는 큰 길 쪽에서는 오히려 사무소가 1층에
되기 때문에 햇빛을 받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재미있는 점은 집의 대문쪽의 약간 큰
골목길과 우경의 사무실 현관이 있는 큰 길은 분위기가 판이했다는 점이다. 골목쪽은 그저
한적한 골목이고 앞에 근린공원까지 있는 반면에 큰 길쪽은 오히려 제법 인적이 잦다는
점이었다. 참 절묘한 위치이지 싶었다.
이것으로 우경은 가정주부로써의 자기위치를 고수하면서도 손님을 놓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경은 사무관및 비서인 석주와 같은 나이의 법무사 한명과 같이 일하는 것이다.
집과는 역시 내부 계단으로 출입한다. 계단은 리모델링하면서 만든 것인데 필요하면 문을
닫아 각 층을 차단하면 된다.
마당은 한 쪽 벽을 허문 뒤 주차장으로 쓰는데 운전하는 사람은 우경이고 정작 가장인
석주는 운전면허가 없다. 군 입대 전에 오토바이를 반쯤 폭주족처럼 몰고 다녔지만 한번
대형사고- 다행히 사람은 상하지 않았지만 하여간 오토바이가 완전히 박살난-를 치고
면허도 취소당하고 나서는 필요도 없고 해서 안 땄던 것이다. 요즘에는 아내에게 운전을
배울까 하고 궁리중이지만....
<수진이는?>
<친구집에서 공부하면서 자고 바로 학교로 갈 거래요.>
<이 녀석이... 설마. 남자친구는 아니겠지.>
<아니에요.>
남편의 말에 우경은 입술을 삐쭉 거렸지만 이내 약간 어두워졌다.
석주는 자신의 귀여운 아내가 얼굴에 그늘이 져 있자 살짝 불안했다.
<무슨 일 있어? >
<저, 그게.....>
저녁에 귀가한 우쿄가 좀 이상하다는 것이다. 멍해져서는 저녁밥을 먹는둥 마는 둥 하고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는 것이다.
무슨일인지 물어도 대답도 없고 엄마나 동생들의 시선을 피하려고만 들어서 우경으로서는
답답했고 마치 재작년의 모습과 비슷해서 겁까지 났다.
<그래서? >
<자기 방에서 자고 있어요. >
그리고 우쿄가 귀가할 때 혁도 같이 왔는데 같이 어두운 표정으로 우경에게 우쿄가 며칠
학교를 쉴 거라고 얘기 해주었다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원래 우쿄가 잘 시간은 아니었다.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할 시간이었다.
심상찮음을 느낀 석주는 자신의 서재에 가방을 놓은 뒤 안방에서 정장의 웃저고리와
넥타이만 풀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나 우쿄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였다.
<얘. 우경아. 자니? 안 자면 문좀 열어봐!! 야!! 우경아!! 권 우경, 아니 사오토메 우쿄!!>
우쿄는 한참만에야 파자마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 역시나 안경을 벗고 있는 상태에서
눈가에 운 흔적이 역력했다.
<..... 울었냐? >
우쿄는 친 아버지의 말에 눈을 아래로 깔아 시선을 피하는 걸로 대답했다.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
석주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부드럽게 물었다. 우쿄는 힘 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석주는 우쿄와 같이 방으로 들어와 마주 앉았다.
<괜찮으니까 아빠한테 말해봐. >
<お.......お父さん..... >
우쿄는 조금씩 눈물을 흘리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혹시 학교에서 누가 너보고 뭐라 했어? >
석주는 재작년에 고등학교에 편입학 시켰을 때도 우쿄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일을 상기하고 물었다. 고등학교라면 몰라도 대학교이고 우쿄는 유학생인데
설마 그럴까 싶기는 했지만....
<い, いいえ。(아, 아니요.)>
<근데 임마!! 왜 사내자식이 질질짜고 그래?!! >
답답해진 석주의 입에서 나온 "사내자식"이라는 말에 우쿄는 폭한의 비열한 폭언이
상기되었고 감정이 북받쳐져서 흐느끼기 시작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な, ないです, 何も...(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우쿄는 울기만 하면서도 끝끝내 입을 다물었다.


<확실하나? 재영이 글마가 범인인 거?>
혁의 차 안에서 친구의 전화에 늦은 저녁에 나온 영진은 우쿄의 일은 빼고 요즘 학교
주변에 출몰하는 변태가 자기들의 고등학교 동창일 거라는 말을 듣고 좀 못믿겠다는 듯
되물었다.
<몰라. 아직은 증거가 나온 건 아니니까. 아니라면 다행이겠지만 정황상 아주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어. >
혁은 대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혁이 이빨 가는 모습을 처음 보는
영진은 그 모습이 흡혈귀의 송곳니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왜 혁이 그 파렴치 범에게
이를 가는 건지 영문은 모른채.....
<하긴 글마가 좀 꼴통이었던 게 아니지만도.....>
혁은 우쿄의 집 앞을 떠나기가 무섭게 유일하게 용의자의 거처를 알고 있는 영진에게
전화해 동행을 요청한 뒤 그와 함께 곧바로 출발했다.
당장이라도 놈을 잡아서 사실을 확인하고 요절을 내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릴 것 같았다.
오늘 우쿄가 피해를 당하기 이틀 전부터 변태가 또다시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도 자신의 추측이 공연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설마 우쿄에게
손을 뻗히겠나 하고 방심해서 경찰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상관하지 않았는데 놈이 결국
우쿄에게까지 더러운 마수를 뻗쳤다는 사실에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잠시 뒤 혁과 영진이 도착한 곳은 어느 동네의 대로변에 위치한 다소 낡은 5층 건물이었다.
영진이 한 후배를 통해 듣기로 이곳의 옥탑방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영진도 듣기만 했지 가 본적은 없었다.
<누구요? >
일단 건물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 옥탑 앞에 이르른 순간 바로 밑의 거주居住용
층에서 낡은 추리닝 바지에 런닝만 입고 배가 잔뜩 나온 몸을 역시 추리닝 상의로 대충
걸친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은 건물주인인 듯한 딸기코의 늙수구레한 남자가 혁과 영진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
<아, 실례합니다. 여기에 혹시 이 재영이라고 경상도 총각 안삽니까? >
<누구? >
되묻는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당신들 누군데? 그 날건달 새끼하고 친구인가? >
<아니, 그냥 아는 사람인데..예.>
남자의 노기怒氣띈 표정에 살짝 질린 두 청년은 대충 둘러댔다. 남자는 오히려 두
청년에게 화가 난 음성으로 심문하듣 묻기 시작했다.
<당신들 그 날건달 놈 어디 있는지 알지? 어딨어? >
<글쎄, 저희도 여기 산다는 얘기만 듣고 볼일이 있어 온 터라.... 근데 왜 그러십니까?>
남자는 대답대신에 득달같이 옥탑층으로 올라와 옥탑의 문을 열었다. 혁과 영진은 문이
열리는 순간 확 풍겨나오는 끔찍한 악취에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조명을 켰을 때는 눈 앞의 참상慘狀에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한마디로 쓰레기장이었다. 낡은 이불위에 옷가지와 먹다 남아서 그냥 방치한지
몇달은 되어보이는 곰팡이가 부유浮游하는 음료수페트병과 아이스크림에 라면국물이
그냥 말라서 눌어붙은 냄비등의 음식물에 갖가지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아마도 유선방송이나 인터넷선 등의 전선電線들과 함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런 데서 사람이 살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가구라고는 어디서 ?어왔는지도 모를 낡아빠지고 유리도 없는 장식장등이고 티비 같은
것은 가지고 나갔는지 있던 흔적만 옆에 번지가 뽀얗게 싸인 곳에 깨끗하다 싶게 남기고
있었다.
벽에는 정말이지 고생대 석탄기에서 페름기사이에나 살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큼지막한 바퀴벌레과 날벌레들이 기어다니거나 옹기종기 붙어 있었고 벽 구석에는 거미줄
천지였다.
혁도 혁이지만 비교적 비위가 좋다고 자부하는 영진도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는 곳이었다.
<이 모양 이꼴을 해놓고 집세를 밀려놓아서 보증금을 다 까먹고 나가라고 했는데 통사정을
하길래 인생이 불상해서 좀 봐줬더니 또 집세를 몇달 치 밀려놓은 채로 며칠 전에 야밤에
날랐더군. 그 새끼, 내가 고소할 거야. 그러려고 일부러 보존해 놨어. 하기사 남은 것 중에
조금이라도 돈 될 것은커녕 오히려 내가 돈 내서 치워야 될 판국이라 억울해서 놔둔
것이기도 하지만 말야!! 자, 말해. 그 날 개호로새끼 어딧어!! 늬들도 콩밥 쳐먹기 싫으면
불어, 얼른!! >
남자는 흥분해서 혁과 영진에게 달려들어 멱살잡이까지 할 기세였다.
<저희도 모릅니다. 그 친구에게 받을 빚이 있어서 물어물어서 찾아온 것 뿐이니까요! >
남자의 설침에 혁은 반발심이 생겨서 다소 화가 난 태도로 대응했고 그에 한동안 두
청년에게 길길이 날 뛰던 남자는 혁에게 약간 기가 죽어 간신히 진정했다.
<조,좋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으니 믿지.하여튼 그 개호로새끼 만나면 내 앞으로
끌고와!! 내가 아주 요절을 내버릴 거니까!! 툭하면 술 쳐먹고 년놈들 끌고와서 아주 개판을
쳐도 그냥 뒀었는데 이런 뭣 같은.....>
나이는 더 많겠지만 스승인 석주에게서 볼 수 있던 남자다운 위엄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보이는 남자의 넋두리를 두 청년은 내심 한심하다는 듯 듣고 있었다.

<뭐꼬!! 괜히 나까지 같이 가서 엄하게 욕까지 쳐들어 묵고 말이다... >
<미안하게 됐어.>
일단 혁의 거처로 온 영진은 일단 혁이 건낸 캔 흑맥주를 들이키며 투덜거렸다.
혁도 소득없이 못볼 꼴만 보고 와서 기분이 더러웠다.
<그건 그렇고 글마 사는 꼬락서니 보니까 진짜 사람 되기는 글렀지 싶다. 우째 사람이
그렇게 사노 말이다. 완전히 상거지꼴 아니가.>
<그 녀석 집이 사정이 어려워졌나? 아버지가 큰 교회 목사라서 그렇게 못사는 것도
아니었잖아? >
<어렵긴 개뿔!! 하기사 요즘 좀 무슨 운영비리運營非理도 터지고 해서 어렵긴 한 모양이다.
그래도 학비다 뭐다 해서 송금도 많이 한 모양이더만 와 그꼴을 하고 사노?>
혀를 차는 영진도 원래 재영과 친한 편이 아니다. 그냥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그나마 싸움에서 대등해서 대등하게 대거리를 했던 것뿐이다.
애초에 성적에서 중 상위권이었던 그로서는 문제아였기는 해도 상위권이었던 혁과 친 했지,
열등생이었던 재영과는 그가 시비를 걸다가 영진에게 두들겨 맞는 것 빼고는 상대할 일이
없었다. 다행히 혁이 압도적이어서 재영이 어린 날의 치기로 혁에게 덤벼드는 일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영진이 편했다면 편했달까?
그 뒤 재영이 혁에게 굴종해버렸고 애초에 싸움을 좀 할 줄 알다 뿐이지 얌전한 편이었던
영진은 차치하고 혁도 석주를 만나서 마음을 잡고 공부에 매진했기 때문에 자기보다
강자인 혁과 영진이 잠잠하자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이다 는 식으로 놈이 계속
건달들의 짱 자리를 꿰차고 있던 것뿐이고…….
아까의 쓰레기하치장에 비하면 마치 고급호텔을 연상시키는 오피스텔 원룸의 주방쪽
바에서 혁과 마주앉아 식욕이 뚝 떨어져 같이 혁이 흑맥주와 같이 내온 약간의 안주는
손도 안댄 채 흑맥주만 들이키던 영진은 문득 의심스럽다는 듯 혁에게 물었다.
<근데 글마가 범인인 거 확실하제? >
<아까도 말했지만 증언에 따른 정황만 있을 따름이야. 확증은 없어.>
<증언? 무슨? >
<..일단 경상도 사투리... >
경상도 사투리라는 말에 같은 경상도방언 사용자인 영진은 실짝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
< 그럼 내도 용의자겠네?!! >
<말을 해도........ 그리고.. 장발에 건장한 체구. 바바리 코트로 몸을 가리다가 표적이
나타나면 알몸을 드러내니까...거기다 목소리나 말투도 그렇고, 심지어 이번에는 체액을
피해자한테 묻혔으니 증거가 확보된 셈이네. >
<또 피해자가 늘었단 말이가? >
<응 오늘. >
<근데, 그 체액이라는 게 설마 "정액"은 아니겄제? >
<.......맞아. >
순간적으로 혁의 손에 쥐어져 있던 맥주 캔이 찌그러졌다. 또다시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영진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꼈다.
<하기사 글마는 원래 생각 없고 남한테 피해 주는 건 생각도 않고 제 멋대로 사는 놈 아이가?
고등학교때 선생님 사모님도 겁탈하겠다고 설치던 놈이니............... >
영진은 잠시 잠시 생각하다가 냉소에 가까운 코 웃음을 치면서 캔에 남은 흑맥주를 비운
뒤 생각난 듯 말했다.
<아참, 그러고 보니께 선생님께 한번 찾아 뵈야지 하기만 하고 그러지 못했는데 한번 모두
모여서 인사드리는 게 어떻노? >
<...................그래야겠지. 하긴 모두들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하시더라.>
<..............근데 사모님은 어떻게 되셨노? 아직도 이쁘시나? >
<당연한 거 아냐? >
영진의 능글스런 물음에 혁은 기분이 풀린 듯 웃으면서 두번째 맥주 캔을 열었다.
<전혀 안 변하셨단 말이제? >
< ... 대신에 옛날보다 무척 섹시해지셨다고나 할까? 이 정도 대답이면 만족해? >
<마!! >
잠시 영진이 혁에게 정색을 하며 달려드는 액션을 취하고 두 사람은 가볍지만 기분 좋게
흑맥주 캔을 부딪혔다.
두 사람의 고등학교 시기의 담임이었던 석주도 상당히 무섭고 엄한 동시에 내심 자상하고
헌신적인 교육태도로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그의 아내인 우경도 본인은 모르겠지만
남편의 제자들에게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때에 그녀는 외모만으로는 나이가 10살 이상은 어린 제자들과 별 차이가 없어보였기
때문에 우연히 그녀를 알게 되는 아이들은 그점이 무척 놀랐고 무엇보다 너무 예쁜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리게 되는 것이다.
엄하지만 자상한 선생님의 사모님은 첫번째로 당시의 사춘기 소년이었던 제자들에게
순진하고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거기다 그녀와 어찌어찌해서 자주 대면할 수록 상냥하고 다정다감한 태도로 마치 친동생
대하듯 대해주는 그녀에게 왠만한 악동이라도 인간적인 호감도 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제자들에게 사랑과 신뢰의 여신神이었다.
딱 한명, 방금전에 혁과 영진이 잡아 단죄하려던 날 건달놈만 빼고는.....
혁과 영진들은 그들에게 신성불가침의 여신이었던 그녀에게 그 어떤 음험한 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을 품는 것 자체를 죄악시 했다. 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소년들이 동경하는 이성에 대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이미 성 겸험이 있던 혁조차도 우경에게 그런 순수한 느낌을 받았었다.
사실 그 전에 혁은 대책이 없을 만큼 삐뚤어지면서 이성을 알기 되자 무책임하리만치
닥치는대로 성행위에 탐닉했었고 환경이 그러했다.
당시에 친구라는 게 대개 날라리에 깡패같은 놈들 뿐이었고 그것은 날나리이지만 준수한
외모의 혁의 모습에 반해서 접근해 오는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보다 훨신 나이가 많은 조폭들까지 굴복시키면서 알게 된 좀 연상의 여자들도
창녀娼女나 호스티스 같은 부류다 보니 그때의 혁으로서는 죄의식없이 성행위를 하고
여자를 다루는 법을 터득했었다.
그러니 또래의 소년들이 갖고 있던 사춘기의 이성에 대한 신비감이나 동경심같은 것은
없었고 여자란 그저 청소년기의 왕성한 성적 욕구를 푸는 도구일 따름이었던 것이다.
그런 부류의 여자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우경"이라는 여인은 그녀 자신도 모르게
처음으로 혁에게 그런 감정을 일깨우게 하고 삐뚤어진 이성관을 바로 잡아세워주었었다.
당시의 혁에게 우경은 "진정한 여인의 아름다움"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경은 혁에게는 "첫사랑"의 여인일 것이었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감정을 철저히 억누름으로서 석주에게는 배은망덕한 제자가 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나중에 대학을 진학하고 이성교제를 하면서 이전보다는 덜하지만 자유로운 이성관계를
섟?되지만 이전과 같은 무책임과 방종함과는 이미 담을 쌓은 채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관계를 쌓아가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져갔던 것이다.
물론 그 어떤 이성과의 만남에서도 10대 시절에우경에게 느꼈던 그런 느낌은 안났다.
그걸 다시금 느끼게 된 대상이 얄궂게도 그녀의 소생이고 그녀의 처녀시절과 이름까지
똑같은 "소년"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더더욱 강렬하고 거기에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의
다소의 욕정까지 더해서........
그래서 누구든 우쿄에게 말도 안돼는 추행을 벌인 그 범인을 혁은 용서할 수 없었다.

<녀석이, 아직도 한국생활이 적응이 안돼서 그러나? >
간신히 우쿄를 진정시켜 재운 뒤 석주는 걱정스럽다는 듯 우경이 -저녁은 방문 한 집
중에 한 곳에서 먹었다고 됐다 하여- 내온 홍차를 한모금 마신 뒤 중얼 거렸다.
혁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우경이 말려서
포기했다.
<좀 힘들지도 모르죠. 케타로에게는 한국은 어디까지나 외국이니까.... >
<그래도 "아버지의 나라"잖아? >
우경의 말에 석주는 약간 반발했다. 물론 석주는 아들의 국적이나 "일본인"이라는
민족적인 정체성을 일단은 인정하고 지켜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우쿄는 엄연히
자기 친 아들이다.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인 권석주의 친아들인 것이다.
<그래도 재작년의 일들을 생각하면 이 나라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거 아니에요?
가령,, 한국인들이 옛날의 앙금때문에 -우리- 일본을 싫어하는 것처럼... >
<그런 얘기가 지금 왜 나와? >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
석주로서는 우경의 지적에 달리 항변할 말이 없었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렸고 우경이
먼저 받더니 무선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가져와 석주에게 넘겼다.
<큰 서방님이에요. >
석주가 받자마자 석준이 심각해진 말투로 물었다.
<형. 케타로군, 아니 우경이 지금 어때? >
<자고 있는데, 왜? >
<아니 우석이가 아까 제 누나랑 말싸움을 하다가 은연중에 이상한 소리를 해서... >
순간 석주는 미진이 우쿄에게 뭔 소리를 해서인가 하고 지례짐작을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럼 혁이 데려다 주고 같이 울상을 하고 있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뭐라고 했는데? >
<아니, 우석이하고 미진이하고 싸우는데 그 와중에 미진이가 우석이 앞에서 우경이를 흉을
봤거든. 그랬더니 우석이가. "오늘 형이 누구때문에 말도 안돼는 봉변을 당했는지 알아?
누나 때문이야. 근데 고마워 하기는 커녕 아직도 무시하고 있어? 그러고도 누나가 사람이야?"
하고 흥분해서 대드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싶어서 우석이한테 물었는데
얘가 한동안 입을 안 여는 거야. 한참 다그치고 나서야 겨우 말했는데.... >
<는데? >
<저번에 미진이랑 미진이 선배, 누구지? 아 강소현양. 그 둘이 치한에게 추행을 당하는 걸
우경이가 구해 줬었지? 그때 그 치한이 오늘 우경이한테 보복을 했다더라구.
때리고 못된 짓을 하는 걸 우석이가 구해줬다네. >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늑해지는 느낌이 든 석주는 석준의 말 중에 그 "나쁜 짓"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우석이 그런 것까지 상세하게 얘기한 것 같진 않고 차마 묻기가 겁이 났다.
-그렇다 하여 석주로서는 설마 남자가 같은 남자에게 성적으로 어쩌구 하는 것까지는
생각을 못했지만-
뒤에서 이상한 표정으로 남편을 응시하는 우경의 눈치를 살피다가 전화기를 들고
자신의 서재로 가서 소리를 죽여서 물었다.
<그래서? >
<일단 경찰에 신고도 했고 병원에서 치료 받으면서 조사도 받았다는 거야.
뭐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건 아니지만 충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라서.....
오늘 일을 우경이가 비밀로 해달래서 우석이도 입을 다물었다가 제 누나가 괘씸해서
순간적으로 말을 한 거고.... >
석주는 잠시 말을 잃더니 겨우 정신을 추츠리고 말을 했다.
<알았어. 우경이는 괜찮아. 제수씨랑 애들 입단속 시켜. 우석이는 비밀을 지킨 거야.
여기는 내게 맡기고.>
<응. 형수께 특히 비밀로 해줘. 많이 놀랄 테니까. 그 범인 자식 검거만 돼봐.
내가 전담해서 평생 감방에서 아주 푹 썩게 만들어 버릴 거야!!>
<그 전에!! 그놈의 자식 걸리면 나한테 먼저 데려와. 그 자리에서 아주 갈아 마셔버리게!! >
결국 석주는 나직하지만 아주 격하게 대답했다. 낮은 음성으로 격한 감정을 억제하려니
평소에 활달하던 그의 목소리가 음산해지기까지 했다.
온 몸의 피가 꺼꾸로 치솟는 기분이 들어서 생각같아서는 경찰이고 뭐고 그 자신이 당장
집밖으로 나가 범인을 찾아서 작살을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실제로 지금은 좀 유柔해지긴
했지만 옛날에는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 중에 누구 하나 학교 근처 불량배에게 두들겨
맞았다거나 삥뜯겼다는 소문만 들리면 바로 찾아가 요절을 내고 몇몇은 갱생시켰던
그였다.
-그러다가 일이 커지면 근방의 조폭들까지 마주쳐야 하는 경우까지 있는데
문제는 그 조폭들조차 석주한테 두들겨 맞고 무릎을 꿇기가 일쑤였고 지금도 근방의 조폭
보스중 몇몇은 석주만 보면 "형님!!"하면서 몸을 사리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어떤 조폭 두목은 자기 구역의 업소에 학생지도 나온 교사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었다가
온 조직원이 자기자신까지 단 한명한테 아주 박살이 나고 굴복해 버린 다음 설마 그
지도교사중에 한명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오야붕으로 모실려고 수소문해도 못찾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들이 사고쳐서 애 담임한테 불려갔더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담임선생이 그 "형님"이었다는 기가 막힌 경험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졸지에 모 조직의 오야붕이 될 뻔 해 본인도 기가 막혔던 석주가 애 생각해서 손 씻으라고
툭 던지듯 말했더니 진짜 손 씻고 지금은 큰 식당 사장님을 하고 있더라는...-
하물며 아들 일인데....
통화를 마치고 서재를 나온 석주는 행여 우경이 놀랄까 싶어서 비밀로 하기로 하고
속상한 기분을 억지로 국꾹 눌러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별거 아냐. 석준이에게 부탁해 놓은게 있어서,,, 혹시 술 없소?>
우경은 갑자기 술을 찾는 남편에게서 분명히 뭔가 있음을 느끼며 주방으로 가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차렸다.
석주는 2층을 잠시 안쓰러운 표정으로 응시한 뒤 캔맥주와 안주가 담긴 쟁반을 들고 거실로
들어서는 우경에게 안방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 뒤 들어갔다.

석주로써는 기가 막혔다. 우쿄는 분명히 옳은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복을 당했다니.
이렇게 세상이 부조리不條理해서야 앞으로 애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것도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가뜩이나 한국이라는 나라에 내심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또다시 전과 같은 혐한嫌韓감정을 갖게 되지나 않을지......
석주는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 나고 머리가 아파왔지만 한편으로 우쿄가 왜 우석등에게
자신의 일을 함구하도록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가족들을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기특한 마음에서겠지. 더구나 우쿄는 무척 마음이 여린
아이이다. 석주에게는 친아버지로써 좀 불만스러운 면이지만 제 3자의 시선으로 보면
인간적인 매력이기도 했다. 이 일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쿄에게는 나중에 모른 척 하고 애둘러 위로해 주기로 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석주는 짐짓 다정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도 한잔 하지? >
안방의 창문 가까이에 있는 2인용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손에 들며 속으로 분을 삭힌
석주는 아내에게 캔 맥주 중에 하나를 권했다.
우경은 그냥 캔 째로 마시기가 망설여져서 두개의 유리잔을 가져왔다.
우경에게 캔 안의 맥주를 잔에 따라준 뒤 자신은 그냥 캔 째로 들이켰다.
<정말 아무 일 아닌 거죠? >
<그렇대도. 당신 내 말 못믿어? >
실은 우경도 남편의 자기 동생과의 통화가 우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짐작했지만
남편이 시치미 뚝 떼니 할 수 없었다.
거기다 남편의 말은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잠자코 맡겨 두는
편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일이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대체로 아내에게 정직했던 석주도 간간히 거짓말을 할 때도 있고 그게 어떨 때는
거의 사기詐欺수준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아내를 배려한 선의의 거짓말이었고
결과적으로 우경에게 나쁜 영향을 준 적이 전혀 없었다.
<아, 어떻게 됐어? >
화제를 돌리기 위해 우경이 의뢰를 받아 전에 결심공판을 했던 재판 얘기를 했다.
필리핀에서 아직 어린- 석주와 사귀어서 우쿄를 임신했을 때의 우경보다 더 어린-
아가씨가 결혼사무소에 의해 한국으로 시집왔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색시를 육체적.
성적으로 학대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어려운 집을 도우려는 기특한
어린마음에 돈을 받고 팔려오다 시피해서 한국에 시집 온 가엾은 처자는 남편의 폭력과
성학대, 거기에 시댁의 구박에 공포에 떨면서 피폐해져 갔고 그걸 알게 된 고국의 친정에서
결국 진정서를 내 이혼소송을 냈던 것이다.
그 수임을 -남편쪽의 철면피적인 몰염치에 질려서 - 변호사라도 한국인을 믿을 수
없었던 원고 측에서 마침 원래 일본인이고 같은 여자라 믿을 수 있었던 우경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우경이 맡았던 일 중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실은 주로 이런 일을 자청해서 했으므로
- 곁에서 지켜보는 석주까지 분노케 했던 것이다.
<당연히 이겼죠. 그 남편이라는 사람도 위자료다 형사처벌이다 해서 좀 불쌍하게는 됐지만....>
<아니!! 잘했어. 쌍노무자식!! 외국에서 여자를 데려다 고생을 시키면 잘 해줘도 모자랄
판에 어디 손 댈 곳도 없는 여자를 술 처먹고 허구헌 날 두들겨 패고 지랄이래? >
<한국남자들이 다 당신같지는 않으니까요.>
변호사 일을 하면서 우경이 느낀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기가 남편을 잘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소녀시절의 자신이 석주를 택했던 게 당시에 너무 철 없고 무모한 짓이었다는 생각은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번 사건은 그나마 "상식적"인 수준에 속했다.
실은 옛날의 사건 중에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우경이 우주를 낳기 전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대형사무소에 소속되어 일할 때의
일인데 사건 당사자들이 우경, 석주부부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부부였다.
사건의 내용을 보고 그런 콩가루 집안은 난생 처음 들어봤다며 개탄했던 석주는 평소에는
자랑스러웠던 한국남자라는 사실이 이때만큼 부끄러웠던 때가 없었을 정도였다.
뜻밖에도 그 사건의 피해자는 "미츠코"라는 이름을 가진 우경과 같은 일본여성이었었다.

주>http://story.soradon.info/honor/author_board_list.php?p_userid=chopd40&p_soption=storyname&p_stxt=너무 야한 우리 일본 며느리 가슴~

마침 우경과 나이도 같았던 미츠코는 우경과는 달리 한국남자한테 3일동안 납치된 뒤
겁탈당해서 임신을 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 남자와 결혼했던 건데 -그 작자는
"원래 족속자체가 음탕한 일본인"인 미츠코가 자신의 섹스 테크닉에 반해 쫓아다닌 거라고
씨도 안먹힐 소리를 해 그 일본인 중에 한명인 우경의 전의戰意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정작 남편은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을 일으켜 감옥에 갔고 시 아버지는 이런저런 구실로
일부러 자기 아들을 감옥에 방치하더니 그 자신이 일본인 며느리를 능욕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때는 어디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 이상한 춤을 일본의 전통무용이라며 며느리에게
배워서 추게까지 했다는 것이다.
결국 며느리를 성 노리개로 삼아 놀다가 늙그막에 너무 무리를 해 결국 "복상사"로 죽었는데
감방에서 나온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버지의 죽음의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해 양쪽이
맞소송을 내 소송이 붙었고 미츠코측 변호의뢰가 우경이 몸담던 직장에 들어와 민망하기
이를데 없는 내용때문에 아무도 맡기를 꺼렸던 것이다.
동료 변호사들이 말리는 데도 끝끝내 우경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맡아서 완전무결한
승리로 끝내 변호사로서의 우경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씁슬한 뒷맛을
남겼다.
중간에 재판 내내 우경을 음흉하고 야릇한 눈빛으로 보던 그 남편이라는 인간이 우경도
한국남자와 결혼해 귀화한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꼬투리 삼아 성적性的인 모욕을
가해 방청중에 격분한 석주가 그 인간에게 린치를 가할 뻔 했다가 법정모독죄로
감치監置까지 당하고-그나마 남편쪽의 후안무치에 질려있던 판사가 석주의 일본인
아내사랑이 갸륵하다며 하루로 봐 준 거지만-의 근무하던 학교에도 시말서始末書를 쓸
뻔하게 만들자 우경도 홧김에 미츠코한테 "당신 어디가서 또 이러고 살 거면 일본인이라고
국적을 밝히지 말아라"라며 신경질을 냈을 정도였다.나중에 자신이 경솔했다 싶어서
사과했고 재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심지어 미츠코가 외간남자와 놀아나기까지
했다며 모함까지 했던 남편은 오히려 아내에게 막대한 위자료등을 물고 명예훼손죄와
위증죄, 모욕죄로 또 철창신세까지 지게 되고 말았다.
그 미츠코는 지금은 일본에서 국적을 회복하고 딸이랑 같이 사는데 이제는 우경과 친구가
돼서 소식이 궁금해 일본 친정에 간 김에 방문했던 우경과 같이 온 석주가 재혼을 권하자
이제 남자라면 질릴대로 질려서 꼴도 보기 싫다고 쓴 웃음을 지었었다.
하여튼 이 일로 우경은 많을 걸 느끼게 되었다.
거기에 비록 한때 자신을 일본인이라며 냉대했지만 나라와 가족을 뺏기고 일제와 싸워야
했던 당신의 경험상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래도 최근에는 비교적 딸처럼 대해주는 데다
국가유공자로 존경받는 시아버지 수양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어떨 때 명색이
며느리인 자신을 냉랭하게 대하는 시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고 시댁 친척들이
벌이는 소동으로 오해를 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처음에 우경이 사법 고시를 패스하고 사법연수원에 입학할 때 남편을 섬기고
가정을 지킬 책무가 있는 여인네가 무슨 사법시험이냐 하며 펄쩍 뛰던 보수적인 노인은
며느리가 하는 일을 나중에 석주를 통해 듣고는 넌지시 격려까지 해줬었다.
<그런가? 하긴 그건 그래!! >
석주는 일부러 거만을 떨며 아내의 칭찬에 맞장구를 쳤다. 실은 속으로 이렇게 말했지만.....
(아니 사실 나도 똑 같은 놈이지, 이팔 청춘 꽃다운 나이의 당신을 미혼모로 만들었지,
멀쩡히 아들을 큰 언니한테 양보했지, 한국에 데려와서 또 이래저래 고생시켰지.... )
우경은 짐짓 거만한 체 하는 남편이 살짝 얄미워졌지만 속 마음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석주가 약간 울적해 하는 기색을 보이자 우경은 남편에게 밀착했다.
<아잉~~~~ 표정이 왜 그래, 아찌~~~♡ 그러면 웃짱 싫어 ♡>
우경이 결혼하기 전에 석주에게 하던 식으로 발랄하게 애교를 부렸다.
한국어도 서툴고 자기보다 나이도 많았던 석주에게 한국말로 아저씨로 부른다는 게
"아찌"가 돼 버린 것이다. 그뒤 결혼하고 나서는 경상도 사투리로 "오빠야"가 되고 그
뒤에는 "여보, 당신"이 되었지만....
석주는 아내의 어리광에 조금 울적했던 기분이 풀렸다.
사실 너무나 예쁘고 귀여운 아내이다.
방금 전의 어리광도 실제 같은 나이의 다른 여성이었다면 오히려 징그러웠겠지만
나이도 어리고 겉으로는 그보다 더 어려서 이런 적당한 어리광도 어울리지 싶었다.


겨우 석주와 우경의 달램을 받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우쿄는 처음의 충격과 함께
점차 분노가 자신의 마음을 휘감기 시작함을 느껴야 했다.
그 분노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파렴치범에 대한 것인지 그 비열하고 야만적인 폭행에
무력했던 자신에 대한 것인지 분간이 안갔다.
우쿄는 옆으로 몸을 웅크린 채 이불 밖에 다다미가 깔린 바닥만 공허히 응시했다.
전에 소년의 몸을 탐했던 사내들은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전혀 아니었다.
그 전의 경우 최소한의 예의는 있었다. 적어도 향수나 스킨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과연
인간에게 나기는 할까 싶을 정도의 악취는 아니었다. 더구나 이런 야만적인 폭력도 없었다.
딱 한번의 예외는 있었다. 12살때 엔가 치한한테 끌려가 거의 강간强姦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1차로 당했던 성폭행이었다.
강제로 옷이 벗겨지고 키스를 당하고 성기를 빨리고 만지작거림을 당한 뒤
펠라티오를 강요당하고 결국 치한은 우쿄의 잔뜩 선 음경에다가 정액을 1차 사정했었다.
많은 양의 정액이 우쿄의 음경과 음낭을 완전히 뒤덮은 것이다.
그 뒤에 급기야 치한이 우쿄를 밑에 깔아 눕히고 자신의 비대한 음경을 우쿄의
항문에 꽃아 넣으려는 순간에 노조무가 경찰관과 함께 들이닥쳐서
그 상황을 보고 격분한 노조무가 경찰들의 만류도 뿌리친 채 치한을 철저히
때려눕혀서 간신히 -치한의 음경이 우쿄의 몸 안으로 삽입되는- 최악의 사태만은
면했지만 생각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기억이었던 그때의 사건은 이상하게 지금은
오히려 생각만 하면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일본인이라 하여 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한국에서와는 달리 일본에서 우쿄는 오히려
인기가 있었다. 실제로 여자친구를 만들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더라도 발렌타이
데이 같은 날 초콜렛을 안 받은 적은 없었다. 문제는 어찌 된 게 발렌타이에 받은
초콜렛보다 화이트 데이에 받은 사탕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나이보다 너무 어려보이고 -마치 늠름한 고구려의 무장武將을 연상시키는 위엄과
품격을 지닌 친 아버지 석주나 사촌동생인 우석과는 전혀 달리- 몸집도 작은데다
여자아이같이 예쁘장해서 귀여운 외모의 우쿄가 같은 학년-이라고는 하도 우쿄가
초등학교에서 2년을 월반해서 실은 중학교 이후로 모두들 우쿄보다 2살은 위였지만...-
의 남자아이들에게 묘한 느낌을 받게 해서인지 은근히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칠 때가 많아서 묘한 장난의 표적이 되기가 일쑤였다.
그나마 이지메나 따돌림 같은 학교폭력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 무관했고 그 점은
다행이지만 간간히 치한에게 성추행을 당할 때가 있는 우쿄로서는 좀 피곤한 일이었다.
우쿄와 다른 의미로 각별히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끌어안거나 몸을 더듬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고 바지 안에서 발기한 음경을 우쿄의 엉덩이나 앞에서 하체의 같은
곳과 맞대거나 심지어 앉아 있는데 얼굴에 밀착하고 비벼대기도하고 심한 경우는
기습키스를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럴 때는 심지어 자기의 혀를 우쿄의 입 안으로 밀어넣기까지 하는 상대방의 남자 아이
입에서 강한 구강청정제의 향이 나기가 일쑤였다.
좀 못된 장난이지만 최소한 불쾌감을 주지 않겠다는 배려에서인지 키스를 하기 전에 꼭
준비해 둔 구강청정제로 입을 헹구고 거사를 감행했던 것이다. 이미 다른 반 아이들에게
오나펫 인기투표에서 남자아이로서는 처음으로 후보로 오르고 3위에까지 링크된
우쿄로서는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1학년 2학기가 중간쯤 지났을 때 알게 된 -사실 입학하자마자 우쿄를
주목하고 있었던- 4학년 선배는 여자한테 그렇게 인기 없는 스타일도 아닌데도 집요하게
우쿄에게 구애求愛를 하는 통에 가끔 옥상으로 끌려가다시피해서 안겨야 했다.
그 선배는 잔뜩 흥분한 채로 우쿄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거나 몸을 만지기 일쑤였고 우쿄는
선배의 바지 앞섶에서 잔득 발기한 음경의 감촉에 소름이 끼치면서 묘한 흥분을 느끼기까지
했다. 사실 그렇게 싫지도 않았던 1학년때의 그 대학선배에게는 나중에 장난으로 우쿄에게 봉사를
요구하자 몇번 손이나 입으로 봉사해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집으로 유인되어 이불 안에서 옷이 홀랑 벗겨진 채 몸. 특히 성기를 만지작 거림을
당하고 급기야 몸을 섞게까지 되었다. 우쿄로서는 그게 본격적인 첫 경험이었다.
생애 첫번째 성교가 같은 남자와의 호모섹스라는 사실이 내심 서글펐지만 그 선배는
우쿄의 몸을 철저히 개척해나갔고 우쿄는 그 선배로 인해 남성의 성기를 펠라티오하거나
받아들이는 방법까지 터득하게 되고 만 것이다.
그 선배와는 우쿄가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선배도 취업해서 사회에 적응하기가 바빠서인지
연락도 없어지면서 끝났다. 그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면 우쿄로서는 부정적이었다.
인간적으로는 좋았지만 지금의 혁만큼은 아니었다.
연애경험은커녕 술맛도 제대로 못 깨달았을 만큼 걷보기에는 너무 어린 우쿄이지만 내면
세계는 비교적 조숙早熟했으므로 어느정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대체로 그 선배는 우쿄에게 육체적인 욕망만 앞서다시피 했던 탓이고 우쿄는 수동적으로
선배의 구애와 성적욕구를 받아들이며 같이 열락에 빠지기만 했을 따름이었다.
분명한 것은 우쿄에게 가끔 성적인 장난을 했던 친구들이나 동성애를 했던 선배는 적어도
우쿄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한쪽은 친구로, 다른 한쪽은 거의 애인으로....
한국에서는 성추행이건 뭐건 처음 당하는 일이었고 이번에 느낀 것은 살의殺意에 가까운
분노와 무기력감이었다. 이번 사건은 명백히 "성性"이 아닌 "폭력"인 것이다.
인격적으로 말살하고 살해하려는....
놈의 야비함에 치가 떨렸다. 한편으로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사람에게 실망하고
노여워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느낌이어서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쁜 감정이 제발
이번만이었으면.......


다음다음날 오후 혁은 혼자 우쿄의 집 근처에 다다랐다가 입고 있는 회색 양복과 같은
색상의 좀 옛스러운 중절모를 푹 쓰고 한손에 가방을 들고 다른 손은 바지주머니에
쑤셔넣은 채 터덜터덜 걷고 있는 중년신사를 발견했다.
<선생님!! >
<아, 민혁아.>
상념에 잠겨서 퇴근하던 석주는 자신의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제자를 보고 반갑게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혁과 나란히 겉으면서 다시 상념에 잠긴 듯 한 표정을 지었다.
혁은 이번만은 선생님게 말을 걸기가 머뭇거려졌다.
<저... 사오토메 군은 좀 어떻습니까? >
겨우 말을 꺼내자 석주는 혁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대답했다.
<괜찮아졌어. >
혁은 석주의 대답에서 다소의 침울함을 느꼈다.
혁이 석진을 통해 전해 듣기에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 다음날부터 이틀동안이나 고열에
시달리며 혼수상태까지 이르는 통에 병원에 데려갈 상황도 안돼어서 의사가 요즘에는 잘
안하는 왕진까지 오고 우경과 수진이 번갈아가며 간호했다는 것이다. 당장 우쿄에게 가고
싶었지만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해서 가지 않는게 좋을 거라는 말 때문에 자제했다.
역시 우쿄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문병을 가고 싶어하는 소현에게도 만류했지만
자신도 우쿄에 대한 걱정과 심지어 그리움으로 번민하다가 용기를 내서 온 것이었다.
우쿄도 우쿄지만 석주나 우경을 볼 면목이 없었다.
선배로서 잘 돌봐주라는 당부를 받았는데,,,,,,,,,,,,,,,,,,
<죄송합니다. 선생님.>
혁은 무의식 중에 마음속의 말을 꺼내고 말았다.
석주는 잠시 혁을 응시하더니 다시 얼굴을 앞으로 향하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네 잘못은 아니잖냐? 우경이가 운이 나빴던 것 뿐이지......>
선생님이 뭔가 알고 계시구나 하고 느낀 혁은 더더욱 석주에게 미안해서 몸 들 바를 몰랐다.

두 남자는 대문쪽으로 가지 않고 큰 길로 현관이 나 있는 우경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어머 민혁군도 왔네요. 어서와요. 사무실 쪽으로는 처음 와보죠? >
감색 스커트와 분홍색 스웨터차림에 안경까지 쓰고 직원과 함께 서로의 노트북 컴퓨터로
작성중인 법원용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우경과 아직 교복을 갈아입지 않은 채 잠시
내려온 수진은 혁을 반갑게 맞이했지만 약간 지친 모습이었다.
<네, 그렇군요. 저기.... 사오토메 군은 어떻습니까? 좀 볼 수 없을 까요? >
<아, 오빠는 지금 자고 있던데요. 다행히 열도 좀 내렸구요. >
수진이 대신 대답하며 문병을 허락했다.
혁은 자기 아들처럼 안경을 쓴 우경의 모습은 처음 보는데 좀 지쳐있긴 했지만 마치
풍기는 인상이 평소의 갓 시집 온 것 같은 귀엽고도 색기넘치는 발랄한 새댁이 아닌
학교에서 보는 청순한 분위기의 여대생 후배들과 같다는 점이 또 놀라웠다.
참 가끔 보는 우경은 그때그때 분위기가 틀려지지만 공통적으로 나이가 엄청 어리게
보인다는 점이다. 반대로 옆에 있는 연 보라색의 상의와 바지로 된 약간은 촌스럽다는
느낌의 정장차림의 여직원은 석주와 같은 또래인데 전형적인 40대 후반의 중년여성-
즉 완전히 아줌마-이어서 우경과 모녀간母女間이라고 하는 게 실감날 지경이다.
실은 같은 나이임에도 석주가 더 나이가 적어보였다.
<선생님은 늘 멋쟁이시네요!!>
<그렇습니까? >
중절모등을 쓴 정장차림을 보고 너스레를 떠는 여직원에게 석주는 중절모를 벗어서
목례를 했다. 중절모는 양복점을 하는 학부형이 촌지 비슷하게 양복을 선물하려는 걸
거절하고 대신 매상을 올려줄 심산으로 -아주 빼도 박도 못하게 카드로 결제해서 -양복을
구입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건데 처음에는 5,60년대의 마카오 신사도 아니고 요즘같은
21세기 초입에 영감님들이나 쓰고 다닐 중절모를 쓰고 다니라니 아직 50살도 안?
석주로서는 거부감을 보이다 한번 써 보고 폼 난다 싶어서 그냥 쓰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모처럼의 찬사에 기분이 좀 나아졌던 석주는 그러나 다음의 말로 인해 뒷통수를 맞았다.
<그렇게 차려입으니까 꼭 야인시대에 나오는 "김두한" 같으시네!! >
칭찬으로 한 말에 다른 사람들은 어두웠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피식하고 웃었고 -자신의
국사 수업시간에 김두한을 정치깡패의 원조라고 사뭇 원색적으로 비난한 적이 있던
-석주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려고 웃어보인다는게 그만 쓴웃음-"썩소"를 짓고 말았다.

수진의 안내로 2층으로 올라갔더니 우주가 우쿄의 방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우주야. 형아 자잖아. 방해하면 안돼~~~ >
<형아 아직도 아야해? >
수진에게 안긴 우주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 우주도 형아가 안 아픈 게 좋지? 그러니까 우주가 얌전히 있어야 해? >
<응. 난 형아 아픈 거 싫어.>
수진은 제법 의젓하게 동생을 달래서 1층으로 향했다. 혁은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파자마 차림으로 가슴까지 이불을 덮고 찬 물로 이마를 덮은 채 잠이 들어 있는 우쿄는
파자마의 앞섬이 조금 풀어진 채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서 약간 짙은 숨을 내쉬며 잠이
들어 있었다.
살갖이 드러난 부분은 땀 범벅이었다.
방 한가운데의 탁자 위에는 조그마한 가습기가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우주를 1충에 데려다 놓고 작은 플라스틱 대야에 찬물을 받아온 수진이 우쿄의 이마에
올려진 수건을 집어들었다.
<저기. 내가 해도 되겠니? >
<....그러실래요? >
<.....의사는 뭐래니? >
<충격과 스트레스로 인한 발열인데 내일부터는 나아질거라고는 하는데......>
수진에게 수건을 건내받은 혁은 수건을 헹군 뒤 일단 우쿄의 얼굴과 가슴의 땀을 닦아줬다.
상당히 뜨거웠다.
상당히 안쓰러웠지만 한편 우쿄의 상기된 모습이 알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잠시동안 또다시 이상한 느낌을 받았음을 깨달은 혁은 자신을 질책한 뒤 수건을
다시 헹궈 단단히 짜고 접어서 우쿄의 이마에 얹었다.
<.................................으...으응.............. 先パイ.......>
우쿄의 입에서 신음소리를 내듯 나온 말에 혁은 왠지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수진이 옆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가끔 이렇게 신음소리를 내는데 도와달라고 하기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부르던데요..... >
<누구누구?>
<돌아가신 큰이모나 이모부-일본의 부모, 석주와 우경은 오토상, 오카상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쪽은 빠빠, 마마라고 부르니까 듣는 쪽에선 구별하기가 쉬우므로-하고 일본의
언니들이랑 외할아버지하고........... 근데 특히 민혁 오빠를 많이 찾던데.....>
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나서 다시 우쿄의 얼굴을 내려보다가 이불에서 삐쳐나온
소년의 손을 감싸잡았다. 부드럽고 하얀 작은 손이 역시 뜨거웠다....


주변은 어두웠다. 방향을 알 수 없어 두려움과 막막함이 엄습했다.
<宇京(우쿄)!!>
하염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우쿄는 자신을 부르는 그리운 목소리에 돌아봤다.
< パパ!! ママ !! 瑞穗お姉ちゃん!! あゆお姉ちゃん!! (아빠!! 엄마!! 미즈호 누나!! 아유누나!!)>
우쿄는 반가운 마음에 노조무와 카스미, 미즈호와 야유가 다정하게 웃으며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가족들은 점차 멀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우쿄는 당혹감과 함께 또다시 공황상태에
빠져야 했다.
그 때"오오오~~~~~~~~~~~~"하는 해괴한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뒷목을 잡는 섭뜩한 손이
느껴졌다.
뭔가 알 수 없는 검고 거대한 물체가 탐욕스럽고 흉악하기 이를데 없는 큼직한 눈만 우쿄에게 향한 채
우쿄를 붙잡고 있었다. 우쿄는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었나 싶게 그 괴물을 뿌리치고 있는 힘껏 도망쳤다.
하지만 그 괴물은 악착같이 쫓아오면서 마치 우쿄를 잡아먹기라도 하려는 듯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だ....すけ.....てよ...(도...와....줘......요......)>
우쿄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면서 누군가에게 간절히 구원을 청했다.
점차 힘이 빠져가서 소리를 치는 것만도 벅차기만 했다.
그 순간 또다른 손이 우쿄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들어올렸다.
우쿄를 낚아챈 것은 거대한 독수리였다. 우쿄를 낚아챈 독수리는 그대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 무시무시한 맹금猛禽은 우쿄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더니 다시 밑을 향했고 우쿄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맹금의 시선을 따라 내려보니 괴물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맹금은 괴물을 물어뜯어서 찢어죽이고 나서 우쿄를 채갔던 것이다.
우쿄는 그 참혹한 광경에 눈을 돌렸다가 다시 맹금의 시선과 마주쳤다.
날카로운 눈빛이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눈길이어서 안심이었다.
이윽고 맹금은 어느 곳에 우쿄를 잡지 않은 발로 내려선 뒤 우쿄를 내려놓았다.
우쿄는 낚였을 때의 자세 그대로 땅에 엎드린 뒤 몸을 돌려 팔꿈치로 상체만 조금 일으킨
채맹금을 올려봤다.
맹금은 앉아서 거대한 날개로 소년을 감싸듯 하더니 점차 몸이 변했다.
아까의 맹금보다는 작아졌지만 우쿄보다는 훨씬 몸집이 크고 준수한 외모의 청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청년이 완전히 변했을 때 아까전까지의 공포와 막막함 대신에 안도安堵와 환희歡喜로
바뀌어갔다.......

<사오토메군!! 케타로!! >
주변이 조금식 변해갔다. 어두운 광야는 지금 자신이 거주하는 방-일본의 것만큼은
아니지만 다다미도 깔고 그에 가깝게 꾸며놓아 그런대로 정이 든-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아까 괴물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구해준 청년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 청년- 혁이 곁에 앉아 정신을 차리는 소년의 모습에 안도하고 기뻐하는 표정을
보이며 부르고 있었다.
< ................先パイ!!!!!!!!!!!!!!!! >
잠시 멍해 있던 우쿄는 앞의 청년이 혁임을 확인하자 마치 용수철로 튀듯 몸을 일으켜
그에게 안겼다.
<케, 케이.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닐 거야. 안정을 취해야 해.>
혁은 말로는 우쿄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그대로 우쿄를 감싸안았다.
혁도 우쿄가 정신을 차린 것이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년이 안기는 순간의
느낌에 혁은 일시 당혹했다. 우쿄가 또래의 소년들보다 너무 어려보이고 가녀린
체구여서인지 몰라도 우정友情의 표시로서 같은 남자를 안는 느낌이 아니었다.
더구나 안겼을 때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다.
가녀리고 마른 몸매인데도 의외로 감촉이 말랑말랑해서 야들야들했고 거기다 열
때문인지 따뜻해서 안는 사람이 더 기분이 좋을 지경이었다. 마치 어린 남자아이,
심지어 소녀를 끌어안을 때의 감촉이라고나 할까?
-마치 석주가 결혼 전의 어린 소녀였던 우경을 안을 때와 같은 느낌일 것이다.-
< 恐かったです!! ( 무서웠어요!!)>
우쿄는 마치 자신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온 기분에 더더욱 혁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악몽을 꿨었나 보구나. 이제 괜찮아.안심해.>
혁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우쿄를 끌어안고 부드럽게 위로하면서 등을 쓸어내려줬다.
그 손길이 우쿄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방안에서 나는 소리에 들여다 본 수진이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가며 소리쳤다.
<엄마!! 아빠!! 오빠가 깨어났어요!! >
그 말에 단숨에 우경과 석주가 정말이냐고 물으며 2층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3일이나 혼수상태였던 아들이 깨어나서 선배에게 안겨 있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참 신기하네. 낮에만 해도 펄펄 끓더니 지금은 열이 많이 내렸어.>
우경은 우쿄의 체온을 재어보고 놀라워했다.
아직은 열이 높지만 아까전처럼은 아니었다.
겨우 진정하고 3일동안 혼수상태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아들에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은 석주가 당장 나가 아이스크림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사온 아이스크림으로 겨우
기운을 차린 뒤 다시 이불을 덮고 누운 우쿄는 새삼 혁에게 어리광을 부렸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혹시 민혁이 오빠가 오셔서 우리 오빠 열이 내린 거 아녜요?>
<그, 글쎄? >
수진의 말에 혁은 멋적게 웃어보였다. 우쿄는 수진의 말이 왠지 사실감이 느껴졌다.
우경은 혁에게 다정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긴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
<그건 그래. >
석주까지 맞장구를 치자 혁은 민망해져서 우쿄에게 시선을 돌려서 이마를 짚었다.
아직은 뜨거웠다. 혁의 손길에 우쿄는 왠지 모를 행복감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왠지는 모르지만 양아버지인 노조무가 생존했을 때 그에게 느꼈던 손길과 같다는
느낌에서였다. 소년의 행복한 미소에 혁은 모처럼만의 편안함을 느꼈다.

<사오토메군은 어때? >
<응, 다행히 많이 좋아졌어. >
미키의 질문에 혁은 기분좋게 대답했다.
미키는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어두웠던 혁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졌음을 느끼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우쿄가 죽으로 식사를 하는 것까지 본 혁은 집을 나섰다. 우쿄는 내심 혁이 더 있으면
하면서도 자기 때문에 혁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꾹 참는 눈치였고 혁도 좀 발길이
안떨어졌었지만 남자 후배때문에 자신이 너무 유난을 떠는게 아닌가 싶어서 억지로
나오긴 했다.
<정말 잘됐다!! 근데 민혁씨, 유난히 밝아진 것 같애. 혹시 민혁씨, 사오토메군을
사랑하는 거 아냐? >
<그런지도 모르지.>
<호호홋~~~ 그렇다고 너무 빠져서 나중에 전에 본 야오이 물처럼 "야오이 커플"이라도
되는거 아닐까 몰라~~~>
그 순간 혁은 뜨끔했지만 짐짓 농담으로 넘겼다.
<그럴리가 있겠어? 그냥 귀여운 동생으로 생각하는 것 뿐이지.....>
<뭐 그렇다는 거야. 그럼 나도 이따가 전화해 봐야겠네. >
세미나 문제로 지방에 내려가 있는 미키는 같이 문병가지 못한 걸 미안해 했다.
<그렇게 해. 그럼 내일 올라오면 봐.>
미키와 통화를 마친 혁은 침대에 양복바지와 와이셔츠 차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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