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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 3부
16-01-23 20:09 1,325회 0건
"진짜 혈액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유리판 위에 부서진 질액의 조각들은 확대시키자 문을 닫은 채석장의 돌무덤
처럼 황량했다. 모서리가 제멋대로 깨진 화강암 조각들로 밖에는 보이지 않
았다. 하지만 각도를 조금씩 조절해 배율을 높이자 눈에 익은 실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닮은 머리 큰 실지렁이. 좀비 바이러스
와 꼭 같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많이 닮아있는 형체였다.

[뭐지! 변종인가?]

난 다시 접안렌즈에 오른쪽 눈을 갖다대었다.

[이제 제 정체를 알았나요]
[!]

그녀의 목소리에 머리카락이 올올이 서는 기분이었다. 상체를 틀어 뒤를 돌아
보자 그녀가 석상처럼 서 있있었다.

[퍽]

뭔가 둔중한 것에 머리를 맞았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를 바
닥에 쓰러져 있었던 걸까. 나는 화끈거리는 뒷목을 잡고 천천히 바닥을 짚고
앉았다. 내 옆에는 깨진 석고상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그녀가 떠났다. 날 살려둔채로 그렇게 떠났다.

2046년 6월

그녀에게 발견된 바이러스는 확실히 좀비 바이러스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었다.
몇 번에 걸친 나의 혈액 표본 실험에서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는 나와 좀비로만 구성된 단세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간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양이와 그녀 김은하가 증명을 하고 떠났지 않은가.
그들은 미지의 종족이었다. 내가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할까? 아니면 그들이
다시 나를 찾아 올까? 새로운 인류를 맞이할 준비가 필요했다. 그들은 분명
알루미늄 야구배트 정도로 상대할 수 없는 집단일 것이다.

오늘 밤도 재 집 앞에는 좀비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놈들은 지치지도
않고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똑 같은 시간에 나와 같은 소음과 같은 행동을
매일 반복했다. 단지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

놈들은 며칠 전부터 가로등을 노리고 있었다. 이제 더이상 놈들이 위협이
아니었기에 기둥에 마늘즙을 바르는 것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예전 같으면
한 달음에 기어 올라갔을 높이를 두고 놈들은 며칠을 기어오르고 떨어지고
를 반복하다가 기어코 한 놈이 램프 바로 밑까지 접근했다. "오 동 수"

놈의 이름이다. 한 때는 나의 죽마고우였고 전쟁 전에는 절친했던 내 이웃
이었다. 놈이 들고 있던 스패너를 휘둘러 램프를 박살내고 말았다.

[크륵 크륵 보았나 친구 클클]

완전한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는 좀비들의 소음만이 날뛰고 있었다. 그 때
도로 저 편에서 자동차 배기음이 들렸다. 좀비들도 놀라서 바라보았고 나도
놀라서 시선이 끌려갔다. 자동차가 가까워지자 도로에 늘어선 좀비들 사이
를 헤드라이트가 먼저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자동차가 돌진
하자 놈들이 마치 볼링핀처럼 튕겨 냈다. 자동차가 내 집 앞에 멈췄다.

검정색 머스탱이었다. 저건 분명히 250 와트급 전기차였다.저 엄청난 동력
을 충전시킬 수 있다면 그들은 대단한 문명권에서 온것이 확실했다. 튕겨
나갔던 볼링 핀들이 다시 머스탱으로 달라 붙었다. "탕" "타당" 운전석에
위에 앉아있던 놈의 몸통이 날아갔다. "탕 탕" 조수석에 달라붙어 돌아보던
놈의 왼쪽 상체 절반이 날아갔다. 엄청난 화력이었다. 좀비들이 겁을 먹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한 무리의 바이크들이 머스탱 주위에 멈췄다.

머스탱 운전석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렸다. 짧은 머리 창백한 얼굴 정장
위로 불거져나온 탄탄한 근육에 키가 큰 남자였다. 남자가 보도블럭을 딛
고 서자 예의 폭주족들도 바닥으로 내려섰다. 정장을 입은 사내가 무리의
대장인듯 보였다. 사내들은 자동소총을 무장하고 있었다. 얼핏보아도 시가
전용 SMG 또는 LMG일종의 자동소총이었다.

가죽점퍼의 사내들이 대장 주위로 다가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이 좀비들은 건물 사이사이에 숨어서 사내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상한
일이었다. 좀비들은 어지간해서 후퇴를 모르는 악마의 군대였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대장이 들고있던 자동소총을 꺼내들고는 소화전 뒤에 숨어있던 한
놈에게 소총을 난사했다. 그 총성을 신호로 가죽 점퍼들도 좀비들을 향해
보이는 대로 총질을 하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놈들은 악마와 같았다. 난
놈들에게서 피의 냄새를 맡았다. 놈들은 그냥 재미로 살육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난 무장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하로 뛰어 내려온 나는 곰팡이 핀 벽에 손전등을 비췄다. 벽 중간에 M
1887이 걸려있었다. 오래된 구식 레버액션 산탄총이다. 고전영화 터미네이
터2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T1000을 향해 발사하던 골동품이었다. 바로
아까 가로등 램프를 박살내고 키-특 거리던 오동수가 내 35번째 생일날
선물한 총이었다. 콩을 볶는 듯한 총성이 아직도 들리고 있었다. 난 탄환
을 장전하면서 1층으로 뛰어 올라가자 마자 강철로 덧댄 쪽창을 비스듬히
밀었다.

한 놈이 가로등 기둥에 위태롭게 몸을 숨기고 있던 동수를 발견하고는 총구
를 가로등 위로 향했다. 가만히 두어도 이제 얼마 뒤면 자연히 소멸하게 될
동수를 굳이 총격으로 걸레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난 생존을 위해
좀비들과 싸웠지만 저 놈들은 순전히 오락으로 좀비들을 죽이고 있었다.

난 동수를 겨누는 대머리 폭주족을 향해 조준경을 겨누었다. 하지만 선뜻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내가 격발을 하면 놈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
차리고 날 사냥하러 덤빌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 집이 강철판
으로 둘러쳐진 요새라고 해도 놈들의 화력을 막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
고 농성전을 한다고 해도 지금 가지고 있는 식량으로는 사흘을 버티기가 힘들
것이었다.

"타당타타타"

놈이 동수를 향해 무차별 난사를 가했다. 하지만 총알은 동수의 발밑을 맞고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킬킬킬킬"
"저 좀비 놈 놀라는 것 좀 봐 우히히히"
"가로등 위에서 아주 탭댄스를 추는 것 같잖아"
"저 꼬라지에 살겠다고 발악하는 게 웃기잖아"
"킬킬킬"
"자 이번엔 용서없다"

대머리가 다시 동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방아쇠 울에 걸린 내 손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다.

"탕"

짧은 총성과 함께 동수가 가로등 꼭대기에서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난
한 없이 밀려오는 무력감을 느끼며 총구를 떨어뜨렸고 놈들은 동수를 마지막
으로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 버렸다.

언젠가 인간으로 홀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고독해서 차라리 이럴바에야
좀비가 되는 것이 오히려 낳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난 지금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이튿날 정오가 다 되도록 나는 침대에 뜬 눈으로 누워 있었다. 머리가 무거
웠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고양이, 김은하, 이름모를 폭주족들
그리고 동수의 죽음. 동수의 죽음을 수수방관한 자책감이 밤새 나를 괴롭
혔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구엔 죽어가는 좀비들과 "나" 뿐이었다. 그런데
이 극명한 두 개체 사이에 또다른 "종"이 나타난 것이다. 놈들은 좀비도 인
간도 아닌 계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이 왜 홀연히 등장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었다.
상대는 극악하고 잔인한 존재란 것이다. 생각 할 수록 놈들의 존재는 미궁으로
만 빠져들었다.

"지이이이잉"

그 때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자동차 특유의 소음이 도로 저편에서 들려
왔다.

"놈들이다"

난 금속재 쪽창을 살짝 열고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예의 그 머스탱과 한 무리
의 폭주족들이 나의 요새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놈들이 낮에 나타날 줄이야"

좀비들에게만 익숙해진 나는 놈들이 밤이 아닌 낮에 활동할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색 머스탱이 속도를 줄이는가 싶더니 도로에 정차하지 않고 나의 정원으로
미끄러져 들어와서 정지했다. 놈들은 이미 나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난 황급히 달려가 침대 맡에 세워 두었던 M1887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쪽창에 기대어 밖을 내다봤다. 밖에는 한 대의 머스탱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머스탱은 전속력으로 나의 요새를 향해 돌진했다.

"콰 쾅"

좀비들에게는 철옹성과 같았던 나의 요새가 미친 코뿔소같은 머스탱의 완력
앞에 한 쪽 벽이 허물어져 버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뚫릴 줄 알았으면 진작
집을 버리고 피했어야 했다. 난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자동차가 후진을 하자 커다랗게 뚫린 구멍으로 자동소총으로 무장을 한 한무리
의 사내들이 거실로 들어왔다.

[위로 올라간 것 같습니다]

노랑머리 장발의남자가 뒤에서 들어오는 짧은 머리에게 보고했다. 짧은 머리는
벽 구석에 서있는 야구방이를 집어 들더니 타석에 서서 스윙을 하는 시늉을
했다.

[잡아와 산 채로]
[놈이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나]
[......,]
[놈이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혼자야]
[예 알겠습니다]

노랑머리와 사내 3명이 자동소총 사격자세를 취하며 2층 게단을 조심스럽게
오르는 사이 대장이 대머리에 가죽점퍼를 야구방망이로 가리키며 턱짓을
했다. 그러자 대머리가 집 밖으로 조용히 빠져 나갔다.

난 2층에 오르자 마자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후 실험실 탁자를 세워 엄폐물
을 만든 후 출입문을 향해 사격자세를 취했다.

"두두두두"

복도에서 쏜 자동소총의 총알이 문을 뚫고 날아와 내가 숨어있는 탁자에 와서
사정없이 박혔다. 출입문은 금세 넝마처럼 찢겨서 손잡이가 부서짐과 동시에
스스로 열리고 말았다. 난 당황한 나머지 산탄총을 쏴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정원을 뛰어 내리려고 2층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창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
다는 듯 대머리 가죽점퍼가 나를 덮쳐왔다.

난 짙게 선팅된 놈들의 자동차에 태워진 뒤 한참을 달려 아지트로 보이는 어떤
건물의 지하로 끌려들어갔다. 난 차에서 내리자 마자 어떤 건장한 건달의 주먹
에 복부를 강타 당한 뒤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두 팔과
두 다리는 결박을 당한 채 의료용 침대에 누워있었다.

얼마 뒤 한 사람이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여자였다. 여자의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메탈등 때문에 검은 그림자 같던 여자가 가까이 오자 어럼
풋이 얼굴의 명암이 드러났다.

[당신은?]
[맞아요 은하예요 김은하]

[당신이 날 밀고했군 왜 그랬지]
[오해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 집으로 찾아가기 전부터 우리는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우리?]
[그래요 우리. 당신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유일한 옛 인류이고]
[옛 인류....,]
[우리는 좀비 바이러스를 다스리며 살아가는 신인류죠]
[신인류!]

난 나도 모르게 헛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현미경으로 본 변형된 좀비 바이러스가 당신들이 다스린다는 바이러스인가?]
[맞아요 우린 변종바이러스에 감염었어요. 하지만 우린 그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가지고 있어요. 완전히 바이러스를 죽일 수는 없지
만 공생관계를 유지 하면서 좀비로 전이 되는 것을 최대한 늦출 수는 있지요]


[그래서 날 잡아 온거로군 그 변종바이러스에 대한 완전한 백신을 찾으려고?
내 몸에 좀비 바이러스 항체가 있는지 실험해 볼 생각에서]

[틀렸어요 우린 이제 그런 항체 따윈 필요없어요.지금의 억제제만으로도 자연
상태의 당신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왜 날 잡아온거야?]
[당신의 미래의 신인류에게 큰 위협이니까요]
[점점 모를 소릴 하는군]
[우린 변종바이러스 억제제를 만들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죠]
[핵전쟁 발발초기에 희생된 시체들을 제대로 처리 할 수 가 없어서 그 시체들
을 땅에다 마구잡이로 매장을 했어요 그리고 그 시체가 부패하면서 좀비 바이
러스를 전지구에 퍼뜨렸죠]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우린 현재 지구상에 남아있는 모든 좀비바이러스에 대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좀비가 아닌 인간에 대한 대책은 아직까지 없죠. 당신이
혼자서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린다면 당신도 썩어가
면서 어떤식으로든 지구상에 당신의 병원균을 퍼뜨릴 거예요. 우린 미래에
당신이 퍼뜨릴 미지의 세균들에 대해서 아무런 연구도 진행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날 아주 흔적도 없이 산화시키려고 하는건가]
[맞아요 당신이란 존재자체가 미래의 신인류에겐 커다란 위협이기 때문에
당신이 살아있을 때 깨끗하게 처리하는게 최선이죠]

[그게 그렇게 되는건가!내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군]
[억울 할 것 없어요. 당신도 당신의 미래를 위해서 수많은 좀비들을 희생
시켰잖아요 그 중엔 내 언니도 있었어요]
[무슨소리야 당신 언니라니 난 당신이 말한 신인류와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야]
[언젠가 시청 앞 도로에서 엉덩이에 주사바늘이 꽂은 채로 끌려나와 태양빛
에 사라진 여자가 바로 내 언니였어요 당신이 죽였죠]
[이런 내가 당신에게 큰 죄를 지었군]
[지구에 꼭 당신같은 옛 인류만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래 ..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했지]

[당신은 미래의 신인류에게는 전설로 전해질 거예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 최후까지 생존한 유일한 인간으로 말이예요]

은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을 나갔고 나 혼자 메탈등 아래 남고 말았다.
늘 혼자였었지만 오늘따라 왜 이리 고독한지 모를 일이다. 나는 이 고독을
조용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난 이제 전설이니까.


훌륭한 고전을 각색을 한답시고 너무 엉망을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서둘러 끝을 맺느라고 엔딩이 깔끔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소라게시판의 적응기라고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생각보다 소라 독자님들 수준이 높으셔서 놀랐습니다. 다음번에는 좀 더

참신한 기획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항상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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